1억 원을 사모펀드에 넣었는데 환매가 멈췄고, 판매사가 원금의 약 80%인 8,000만 원을 먼저 보상해 줬다고 해 봅시다. 남은 2,000만 원의 손실, 그리고 판매사가 대신 물어 준 8,000만 원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펀드가 해외 펀드에 돈을 넣은 구조라면 국내 운용사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상품을 ‘재간접펀드’라고 합니다. 펀드가 직접 주식이나 채권을 사는 대신 다른 펀드(기초펀드)에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투자자는 기초펀드를 직접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에, 운용사가 무엇을 확인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해외 기초펀드라서 확인이 어려웠다면 운용사는 책임을 면할까요?
대법원은 2026년 10월 8일, 운용사가 해외 기초펀드의 반복된 한정의견을 확인하지 않고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투자자보호의무 위반이라며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대법원 2026. 10. 8. 선고 2024다302965 판결)
어떤 사건이었나요?
한 운용사는 해외 중소기업 대출 펀드 등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해외 기초펀드에 회계부정 의혹이 불거졌고 환매가 중단됐습니다.
판매사는 투자자 대부분에게 원금의 약 80%를 먼저 보상한 뒤, 투자자의 권리를 넘겨받아 운용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1심과 2심은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정의견’은 무엇인가요?
‘한정의견’은 회계감사인이 “일부 항목은 적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힌 의견입니다. 재무제표 전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해 반복됐다면, 그 신호는 더 무겁게 읽힐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본 세 가지 사정
첫째, 운용사는 실사 과정에서 기초펀드가 한정의견을 여러 해 반복해 받았다는 답변을 이미 받았습니다. 문제 신호를 손에 쥐고 있었던 셈입니다.
둘째, 한정의견의 이유가 수익과 관련돼 있었습니다. 펀드의 수익 구조가 믿을 만한지 의심할 사정이었습니다.
셋째, 상품설명서는 회계투명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의견은 투자 판단에 큰 영향을 줄 정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외 펀드라는 사정은 왜 면책이 되지 않았나요?
해외 펀드라서 직접 확인에 한계가 있더라도, 이 의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운용사는 투자 정보를 처음 만들고 전달하는 위치에 있다고 봤습니다.
투자자가 받는 설명은 결국 운용사가 만든 자료에서 나옵니다. 그 자료를 만드는 쪽이 이미 알고 있던 위험 신호를 걸러 냈다면, 투자자로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투자자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운용사가 실사 과정에서 알게 된 회계상의 문제를 확인하고 알렸는지가 책임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손실이 났다는 사실만으로 책임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확인할 수 있었던 위험 신호를 놓쳤다면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이때는 투자 전에 받은 상품설명서와 투자제안서가 무엇을 강조했는지, 기초펀드의 감사의견을 어떻게 설명받았는지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판매사 보상을 받을 때 남은 권리를 누구에게 넘기는지도 합의서에서 확인해 둘 대목입니다.
원심이 파기된 만큼, 다시 이어질 심리에서 운용사의 배상 범위가 어떻게 정리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구체적인 사안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